"알림: Good4Joy 프로젝트는 위키를 기반으로 하는 독립 웹사이트(good4joy.org)와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love_of_jesus) 두 곳에서 콘텐츠를 제공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최근 문서들이 있고, 위키는 후에 업데이트하려고 하니 참고하세요."
룻기 3 (하나님의 순리대로)
- 설교 본문: 룻기 3:14 - 4:6
- 날자: 2015/12/24
도입 (간증, 질문)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을 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에 주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나누니 감사합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죽기까지 하신 하나님께 다시 한 번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오늘 말씀은 룻기 인 데, 책의 주인공은 물론 신실하고 현숙한 룻 이지만 말씀을 준비하며 남자 주인공 보아스도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성품을 살펴보며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는 저희 되기를 소원하는 시간 되었으면 합니다.
먼저 어제까지의 내용을 잠시 요약하겠습니다. 모압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는 며느리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베들레헴에서 그들은 나오미의 죽은 남편의 친척 보아스를 만나고 보아스는 가난한 두 과부에게 친절과 선을 베풉니다. 나오미는 며느리 룻이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나기를 원했고 룻을 밤에 보아스에게 보내 청혼하게 합니다. 이에 대해 보아스는 더 가까운 친척에게 먼저 기회를 주고 그 친척이 룻을 거두지 않는다면 자기가 청을 받겠다고 룻을 안심시키고 오늘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본문
14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보아스는 밤에 일어난 이 사건으로 현숙한 룻이 다른 이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5절에 가난한 나오미와 룻에게 양식을 주며 선을 배풉니다. 레위기와 신명기의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이삭을 남기라"는 율법 이상으로 보아스는 앞에 2장에서 처럼 불쌍한 두 과부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친절하고, 남을 배려하며, 어려운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사랑의 성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친절과 배려를 생각하면 저의 첫 미국 여행이 항상 떠오릅니다. 미국으로 향하는 기내에 대부분의 승객이 잠들어 있는 가운데 한 백인 남자 분이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서는 모습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앞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의자에 붙어있는 선반을 매우 천천히 올려놓았고 주위 사람을 깨우지 않으려고 마치 영화의 슬루우 모션 처럼 조심스럽게 움직여 통로로 나오는 모습이었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그분의 모습에 저는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것이 또한 제가 미국 이민 결정에 이유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남에게 친절을 배풀고, 배려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4:1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2 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
영어 성경에 town gate 혹은 city gate로 해석하고 있는 성문은 오늘날 town hall 같은 곳으로 당시 중요한 비지니스나 법적 문제 논의 혹은 중대한 발표를 하는 장소였다고 합니다. 그 곳에서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를 만나고 법적 절차에 필요한 숫자인 열 명의 어른들을 모아놓고 공개적인 논의를 시작합니다. 여기에 "마침" 만났다고 하는데 선을 행하는 보아스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3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소유지를 팔다" 에 두 가지 가능한 해석이 있다고 합니다. (1) 나오미가 땅을 실제로 소유하고 있으나 궁핍을 면하기 위해서 팔려 한다. (2)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가족을 데리고 모압으로 떠날 때 팔았고 법으로 나오미가 그 땅을 다시 살 권리가 있는데 그 권리를 팔려 한다.
4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레위기 25:25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보아스는 이 율법에 따라 자기보다 더 가까운 친척에게 먼저 기회를 줍니다. 보아스는 밤에 자신을 찾아온 룻을 그냥 취할 수도 있었겠지만, 공정하게 합법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친절과 사랑의 성품과 더불어 보아스는 올바른, 정의로운 즉 righteous 한 성품을 가지고 하나님의 순리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순리대로 행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것을 고백합니다. 그것이 눈앞에 손해로 보이기도하고 또 실질적으로 손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정의롭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을 저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순리대로 행 하면 마음에 평안을 주시거나 보아스가 성문에서 "마침" 기업 무를 자를 만나는 것 같은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며 저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누리기도 합니다.
제가 모건 힐에 집을 구입합니다. 전에도 집을 구입한 경험이 있는데 예전에는 구입하는 과정에서 조금의 손해라도 보지 않기 위해 여러가지로 따지며 스트레스도 받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감사한것은 지금은 하나님의 순리대로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금전적 손익 보다는 과정에 관련된 분들에게 친절을 배풀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려 하니 제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손해가 아닌 오히려 제게 유리하게 풀리는 상황도 경험하며 신기하기도 합니다. 너무나 부족한 저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찬양치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순리대로 처리하고 있는 보아스가 예상을 했는지 모르지만, 기업 무를 자의 대답은 무르겠다 였습니다. 그러니, 5절에서 보아스는 신명기 25:5에 있는 기업 무를 자의 또 다른 의무로 죽은 남편의 대를 이을 수 있도록 룻도 취해야 한다는 율법을 알려줍니다. 이 말을 듣고,
6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만약 기업 무를 자에게 다른 아들이 없거나 죽어서 이방 여인 룻과의 사이에서 난 아들 만 있다면 자기의 유산을 그 아들이 상속받을 수도 있기에 기업 무를 자는 그 손해를 두려워 하여 발을 빼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나오미의 두 며느리 중 한 며느리는 모압 고향에 남은 것과 비교하여 불쌍한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은 룻의 신실함과 사랑이 비교되어 더 돗 보이듯 기업 무를 자의 이 같은 태도와 비교하여 보아스는 그런 손해에 대한 두려움 없이 불쌍한 과부를 배려하고 있기에 그의 선함이 더 돗 보입니다.
보아스는 자기 사랑의 세상의 순리가 아닌 하나님의 순리대로 남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남을 위한 삶" 그리고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하면 어떤 인물이 떠오르시는 지요? 2000년 전 하늘 보좌를 뒤로하시고 인간에 몸으로 오신 예수님, 피조물에게 온갖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흘려 내시면서 까지 저희를 사랑하신 그 예수님 생각납니다. 그 분께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저희에게 주시는 희생적 사랑의 가르침을 들어 보시죠.
요한복음12:24-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인터넷에서 이 말씀을 검색하다 존 파이퍼 목사님의 글을 보게되었는데 한 부분을 나누겠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미워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당신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좋게 말한다고 해도, 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미워한다고 해도, 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많은 것을 가졌다 해도, 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적게 가졌다 해도, 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핍박을 당하거나 속임을 당하여도, 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유명하거나 유명하지 않은 것도, 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죽게 된다 해도, 이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의 중요한 문제, 관심사는 무엇인지요?
기사를 읽으며 저는 복음전도에 대한 도전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자신의 많은 것 즉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뒤로 하고 복음을 전하느라 수고하신 여러분께 이자리를 빌어 박수를 드립니다. 사실 제 박수도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떠튼 박수를 드리고 싶어습니다. 왜냐하면 전도자 여러분이 형제/자매로서 제게 매우 소중하니까요.
그 기사는 바울의 이 고백으로 마치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결론과 적용
결론입니다. 보아스는 남을 향한 희생적인 사랑으로 불쌍한 룻을 구원했습니다. 그의 자손인 다윗은 이방 민족으로 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했고 후손으로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셨습니다. 나오미의 빈손처럼 죄 때문에 빈손이고 황폐했던 저희에게 십자가의 희생적인 사랑이 평안과 그리고 천국의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 감사함을 생각하며 저희도 주님을 좆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세상의 것들은 과감히 버리며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삶 살기를 다짐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관련 문서
검색: 룻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