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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2 (헤롯 왕의 죽음, 복음의 진보)

Good4Joy

헤롯 왕의 죽음 (복음의 진보)

  • 본문: 사도행전 12:18-25
  • 일자: 2018/1/31 (수)
  • 오디오 파일:Acts12.m4a (정정: (8분 24초 지점) "복음을 진보하는 것은" --> "복음 진보를 방해하는 것은")

서론

사도행전 (성령행전)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구원의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는 과정 즉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그 시대 중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AD 30년 부터 바울의 로마에서 전도하는 AD 60년 경 까지 약 30년 간의 사건들을 잘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예수님을 직접 보고 따랐던 제자들이 모두 죽고 이천년이 지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도행전은 신앙 생활에 기준이 되는 매우 소중한 책이라 믿습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들의 삶을 보며 도전과 더불어 격려를 받고, 특히, 거짓이 많은 마지막 때 사도행전은 진짜를 비교 선별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니, 잘 묵상하시며 은혜 많이 받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이번 설교를 준비를 하며, 사도행전 전체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며 복음이 퍼져나가는 복음의 진보를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은 그 복음 진보를 마치 한편의 영화 처럼 흥미롭게 전개하고 있는데, 오늘 본문이 길지 않으니 본문과 더불어 좀 더 폭 넓게 그 복음 진보를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영화 처럼, 사도행전에는 등장 인물이 있습니다. (1) 복음의 진보를 주관하시는 성령님, 성령님은 좋은 주인공으로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도 부릅니다. (2) 그 진보를 막으려는 사단, 그는 악한 주인공으로 박해, 거짓을 통해 복음의 진보를 방해합니다. 그리고 (3) 그 복음 진보에 쓰임 받는 교회와 성도들입니다. 성령님, 사단, 교회와 성도들이 주요 등장 인물들이고, 오늘 본문까지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11장까지 요약 (복음의 진보)

오순절에 성령님을 받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로 3,000명이 침례 받고, 침례 받은 성도들은 (2:46, 47)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기적을 행하며 복음을 전하는 한편 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인들은 그런 성도들을 미워하고 박해합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굴하지 않고 (5:42)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교회는 일곱 집사를 세우고, 그 중 스데반 집사는 (7장) 지혜와 성령으로 공회 (Sanhedrin)에서 멋진 설교를 합니다. 그 설교를 듣고 마음이 찔린 유대인들은 회개 대신 이를 갈며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서 죽입니다. (8장)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전도하고, (9장) 바울, 당시 사울이 교회를 박해하던 중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고 (9: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 했습니다. 바울처럼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이들은 바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바울을 유대인들은 죽이려 하고 바울의 박해 받는 전도자의 삶이 시작됩니다. (10장) 베드로는 고넬로 백부장에게 전도하고 이방인도 믿고 성령을 받습니다. 그리고, (11:19)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복음의 진보 성령님의 행진이 계속됩니다.

12장 (헤롯 왕의 박해)

헤롯이 교회를 박해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가 야고보를 죽였는데, (12: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합니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던 (2:47)" 교회 지만 또한 유대인들이 싫어하며 박해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교회 성도와 박해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복음 진보를 막으려는 사단은 끝까지 성도를 박해할 것이라 예수님은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경고와 더불어, 박해 받는자는 복이 있으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다 (마5:11, 12) 격려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가르치는 삶으로 전도니 관계 전도가 잘못 응용되면 귀한 복음이 전해지지 못하는 것 뿐 아니라 성도들이 주님께서 약속하신 박해의 복을 경험하지 못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인으로 우리는 당연히 좋은 삶을 살아야 하고 그 결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또한 관계가 끊어질 수 있는 희생을 감수하고 두려움을 떨치고 입을 열어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성도들은 살아 역동하는 말씀의 권능을 경험하고 박해 받는 복, 구원의 믿음을 더욱 확신하는 복을 누릴 것 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박해 받으면 기뻐하며 더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이지요.

교회를 박해하며 야고보를 죽인 헤롯 왕은 베드로도 옥에 가둡니다. 그러나 교회는 간절히 기도하고 천사의 도움으로 베드로는 옥에서 풀려나고 오늘 본문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본론

헤롯 왕의 죽음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날이 새매 (6)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NIV) The night before Herod was to bring him to trial" 즉 재판하려는 날. 죄수가 없어졌기에 소동이 나고, (19) 헤롯은 책임을 물어 간수들을 죽이라 명령하고, 가이사랴로 갑니다.

  • 가이사랴 (Caesarea):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 지중해 연안 항구 도시로, 헤롯 왕 (Herod Agrippa I, 11 BC – 44 AD)의 할아버지 헤롯 대왕 (Herod the Great)이 25~13 BC 건설했다고 합니다. 가이사랴는 당시 유대를 지배하던 로마 정부의 지역 본부였고, 로마 지도자 없을 때 헤롯 왕은 그의 수도로 썼다고 합니다. 가이사랴는 또한 이방인으로는 처음으로 백부장 고넬료와 그의 친인척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곳입니다. 사도행전 10장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이유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헤롯 왕이 매우 화가 났습니다. 두로와 시돈 (Tyre and Sidon)은 베니게 (Phoenica, 오늘날 Lebanon 땅)의 주요 도시들로 당시 헤롯 왕이 다스리지는 않았지만, 헤롯 왕이 다스리는 갈릴리에서 곡물을 공급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헤롯이 화가 났기에, 식량 공급이 끊어질 수 있으므로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 왕의 신하를 설득해 왕의 노여움을 풀려 합니다.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1세기 유대인으로 로마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였던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Flavius Josephus)의 기록에 의하면, 그 날은 당시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Claudius Caesar 41-54 AD, 네로 황제 전)의 영광을 기념하는 날이었고 헤롯은 은색의 눈부시게 휘황찬란한 왕복을 입었다고 합니다. 백성들이 그를 신으로 칭송하고 환호하는데 헤롯이 갑자기 커다란 고통으로 쓰러졌고, 행사장에서 실려나가 5일 만에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그의 죽음을 (23)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라 매우 적나라하고 잔인하게 표현하며 우리에게 강한 교훈을 주려 하는듯 합니다.

헤롯 죽음의 교훈

두 가지로 찾아보았습니다. (1) 백성들이 헤롯을 신으로 칭송하고 환호하는데, (23)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것에 대한 벌을 받은 것이죠. (2) 헤롯은 교회를 박해하며 성령님의 행진 복음의 진보를 방해했습니다.

뒤 24절로 보아 성경은 이 두 번째 교훈, 복음 진보를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헤롯 왕처럼, 교회를 박해하며 복음의 진보를 방해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위험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 계획에 대적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 결과는 주의 사자에게 쳐 죽임을 당하고 벌레에게 먹히는 처절한 파멸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진보를 위해, 베드로의 예 처럼, 성도를 도우시기도 하지만, 헤롯의 예 처럼, 악이나 죄를 심판하시며 개입하시는 것을 사도행전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5장)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교회에 거짓말 하다 바로 죽임을 당합니다. 초대 교회가 거룩하고 질서 있게 복음을 잘 전파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악을 즉각 심판하신 것이죠. 스데반 집사의 순교 후 (8:1)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 졌습니다. 한 해석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1:8)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리라 했는데, 교회 스스로 나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앉아 있었기에 결국은 박해받고 나갔다 합니다. 하나님께서 강권으로 개입하시며 복음의 진보를 도우시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But the word of God increased and multiplied.) But 이라는 접속사를 썼습니다. (NIV) But the word of God continued to spread and flourish.

헤롯은 교회를 박해했지만, But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복음의 진보는 계속됩니다. 복음의 진보는 성령님께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니 막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든 원치 안 튼, 알든 알지 못하든, 거짓으로 속고 있든, 박해 하든, 우리가 동참 하든 동참하지 안 튼, 복음의 진보는 계속되고 "말씀은 흥왕하며" 주님의 약속대로 복음은 땅끝까지 전해질 것입니다.

누가는 복음 진보, 말씀의 흥왕을 오늘 본문 뿐 아니라 사도행전 전체를 통해 계속 보고하고 있습니다. (6장) 사도들이 일곱 집사에게 안수한 후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9장) 바울이 회심하고 예루살렘으로 온 후 (9:31)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16장) 바울의 2차 선교 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데리고 갈때 (16: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19장)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 (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28장) 바울이 로마에서 가택 연금에 있을 때 (28: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복음의 진보, 성령님의 행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25) 바나바와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 헌금 사역을 마치고 마가를 데리고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12장을 맺고 있습니다. 12장까지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을 통한 복음 진보가, 13장부터는 바울로 이어진다는 복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복음 진보의 드라마는 베드로를 fade out 시키고, 바울을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죠. 바울도 복음 진보에 귀하게 쓰임을 받고 28장에서 fade out 됩니다. 그리고 2000년 동안 많은 성도와 교회가 대를 이어 이 복음 진보에 쓰임 받고 그리고 fade out되는 과정을 거쳐 오늘 코너스톤 교회 우리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적용/결론

그렇다면, 21세기 복음 진보 드라마에 등장한 저와 여러분의 삶은 어때야 합니까? 객관식으로 드리겠습니다.

(1) 헤롯왕 처럼 복음 진보 방해하다 벌레에 잡아 먹히거나, 박해 받지 않으려고 이런 저런 핑계 대며 찌질하게 산다.

(2) 성령님의 권능으로 담대하게 복음 전파하며 고난에도 기뻐하며 멋지게 산다.

저와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인지요? 쉬운 선택을 위해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복음 진보의 끝을 주님이 승리하고 사단이 패배하는 그 끝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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