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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11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 본문: 스가랴 (Zechariah) 11장
- 일자: 2017/12/14 (목)
- 오디오 File:Zechariah_11.m4a
서론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과 70년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당시 스가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인 동시에 제사장으로 성전 재건을 격려하며, 소망, 위로, 구원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합니다 (에스라 5:1, 2). 그가 쓴 스가랴서는 꿈, 환상 이야기로 이해가 쉽지 않았습니다. 몇몇 해석을 참고하고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정리하였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예언서를 묵상하며 도움이 되었고 특히 본문에 예언된 예수님 이야기와 사건, 역사와 오늘 현실과 연결해 보며 흥미도 있었고 은혜와 도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은혜가 되길 축복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 11장은 스가랴서 전체가 주는 메시지인 소망과는 다르게, 1-3 하나님의 심판, 나머지 절에서 심판하시는 이유가 설명됩니다. 한 해석에 의하면 이 심판의 장면은 AD 70년, 예수님께서 승천 후 약 40년 뒤, 예루살렘이 로마에 점령당한 사건의 예언이라 합니다. 그 해석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건을 오늘 본문의 심판으로 생각하며 본문을 풀어 가겠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1-3)
1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고 백향목은 레바논 지역의 자랑이나 권세를 상징합니다. 나무를 의인화하며 백향목이 불타고 (2) 아름답고 크고 작은 나무와 숲이 쓰러집니다. 나무들뿐 아니라 (3) 목자들과 동물들이 파멸을 보며 울부짖고, (1) "네 문을 열고" 즉 그 파멸을 저항 없이 힘없이 항복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위치로 보면, 레바논은 이스라엘의 북쪽이고, (2) 바산은 갈릴리 북동쪽으로 이스라엘의 중간, (3) 요단은 이스라엘의 남쪽으로,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이스라엘 온 땅이 파멸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AD 70년 사건 때 유대인 군대를 지휘했는데 후에 로마의 정치가이자 역사가가 된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Flavius Josephus)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예루살렘에서 110만 명의 민간인이 죽고 97,000명이 노예로 팔려갔다고 합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했고, 오늘날의 나라를 찾기 까지 거의 2천 년 동안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았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을 완전히 파멸시키며 심판하시느지 나머지 절에서 설명되는데, 요약하면 진정한 목자, 메시아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목자 거부 (4-7)
4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4절부터 스가랴는 목자 역할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목자 역할을 하는 스가랴에게 양을 먹이라,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하십니다. 자료에 의하면 이 목자는 메시아 즉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진정한 목자,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이스라엘이 거부했기에 심판받을, 잡혀 죽을 양 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5) 이스라엘을 사고 판 자들이 하나님을 조롱하고 그들의 목자들 이스라엘의 리더들은 백성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6) 이웃과 임금, AD 70년 사건으로 해석한다면 로마와 황제 즉 시저에 패망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다시는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구원하지 않습니다. 두렵고 무서운 심판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7) 목자 역할을 하는 스가랴가 심판받아야 할 불쌍한 양 떼를 먹이는데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막대기는 당시 목자들이 쓰던 일반적인 도구로, "은총"의 막대기는 이스라엘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신 선택의 상징이고 "연합"의 막대기는 그 은혜와 사랑으로 백성의 연합 혹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연합의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은총"과 "연합", 자비, 은혜, 하나님과의 평화, 구원 ... 진정한 목자, 예수님을 상상할 수 있는 단어들입니다.
언약 끊어짐 (8-11)
(8) 세 목자를 제거하였으니 세 목자는 이스라엘의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정치 지도자 세 부류의 상징으로 AD 70년 사건으로 이스라엘의 선지자, 제사장, 지도자들이 모두 제거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I became impatient with them)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인내가 끝났고 백성들도 하나님을 미워합니다. 그래서 (9)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먹이지도, 보호하시도 않고 방관하시겠다 합니다. AD 70년 사건으로 수 많은 백성이 죽고 노예로 팔려갔으며, 심지어 서로 살을 먹는 대로, 사람들이 인육을 먹었다는 자료도 있습니다. 그런 고통 속에 있는 백성을 버리시고, (10)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상징인 은총의 막대기를 꺽으시며 언약을 폐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분이 시니 여기서 언약은 조건부 언약이라 해석합니다. (슥 1:3) "내게로 돌아오라 ...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6:15) "너희가 만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진대 이같이 되리라" 조건부 약속을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하나님 은총의 언약을 폐하는 원인입니다.
(11) 내 말을 지키던 가련한 양들 (NIV, the oppressed of the flock, who were watching me, KJV, the poor of the flock that waited upon me) 진정한 목자, 메시아, 예수님을 기다리며 고난 속에도 말씀을 지키는 가련한 양들. AD 70년 사건 당시, 예수님을 기다리는 심령이 가난한 이들, 남은 이, 충성스러운 교회. 그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보며 스가랴의 이 예언,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짐을 알았을 것입니다.
(12) 목자 역할을 하는 스가랴는 그들에게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품삯을 요구하고, 그들은 은 30개를 줍니다. 가룟 유다가 은 30냥으로 예수님을 팔고, 양심에 가책을 받아 그 돈을 돌려주었는데, (13) "여호와의 전에 던지고"라 예언하고 있고, 유다가 돌려준 은 30냥으로 대제사장들은 토기장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은 것을 (마 27:2-7), 오늘 본문에 예언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은 30냥, 유대인들에게 미천한 종의 가치로 상징되는, 그 가치 정도로 이스라엘은 진정한 목자, 진정한 왕, 메시아,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래 참으신 하나님의 인내가 끝나고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I became impatient with them)" (10) 은총의 막대기와 (14) 연합의 막대기를 꺾으십니다. 그 심판의 결과는 멸망으로 AD 70년 사건 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총이나 연합 없이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어리석은 목자 (15-17)
구약에 "어리석다"라는 단어는 "악하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합니다. 이 어리석은, 악한 목자는 (16) 잃어버린 양에 관심이 없고, 돌보아 주지 않으며 오히려 그 양을 잔인하게 죽이고 잡아먹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양들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은 진정한 목자 대신 어리석은 목자를 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 끌려가 재판을 받으실 때, 빌라도가 예수님을 풀어 주려고, 예수님과 죄수 바라바 중에 선택하라 했을 때 유대인들은 예수님 대신 바라바를 선택했습니다 (마27:21). 또한, (요19:15)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며, 유대인들은 예수님 대신 가이사, 시저, 즉 로마의 황제를 그들의 왕으로 택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유대인들에게, (요 5: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하신 예언과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수님이 아닌 그들이 택한 로마에게 AD 70년 사건을 통해 멸망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진정한 목자 예수님을 거부함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어리석은 목자, 악한 목자를 통해 심판받습니다. 그런데, (17) 하나님은 또한 그 악한 목자의 힘을 상징하는 팔과, 지혜를 상징하는 눈을 치며 심판하십니다. 바벨론을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지만 그들의 악행은 인정하지는 않으셨듯,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목자도 심하게 벌한다 하시며 본문을 맺고 있습니다.
적용/결론
좋은 목자인 예수님과 비교되는 어리석은 목자. 그런데, 이스라엘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그리고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진정한 목자 예수님을 거부하고 어리석은 목자를 택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라는 평을 받기도 하는 교황과 로마 카톨릭.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이 아닌 잘못된 교리, 어리석은 목자 따르며 멸망의 길로 갔을까요? 오늘날 개신교, 우리 교회들은 어떻습니까?
저는 교회 다니기 전 그리고 다닌 후에도 몇 년 동안, "긍정의 삶"으로 잘 알려진 조엘 오스틴 목사의 설교를 많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축복, 행복한 가정, 자식, 직장에서 성공, 자신감. 그의 가르침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성령님으로 말씀을 깨달아 가며 그 목사의 가르침이 성경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갑니다. 그의 가르침에는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의 진노, 심판, 공의는 빠져있고, 예수님께서 가르치는 이 땅에서 희생, 고난, 박해 등 제자의 삶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가 조엘 오스틴 목사와 비슷한 가르침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세상과 별 다르지 않은 삶을 사는 교인들에게, 회개와 진정한 중생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참고로, 현 IMB 총재 David Platt 목사님은 중생한 성도를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제가 고속도로 위에 서 있는데 질주하는 커다란 트럭에 부딪쳤습니다. 전에 비해 제 모습이 얼마나 망가지고 변했을 까요? 그렇다면 거룩한 하나님을 만난, 자신의 죽을 죄를 씻어주신 예수님, 왕중의 왕, 주중의 주, 진정한 목자 따라가는 성도와 그의 삶에는 얼마나 큰 변화가 보여 질까요? 아무런 변화 없는 교인들, 그리고 그들에게 진정한 회개가 아닌 간지러운 귀를 긁어주는 리더들. 만일 그들의 관심이 성도를 진정한 목자 예수님께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면, 교인 수, 교회의 양적 성장, 그래서 업적을 쌓으며 자기 이름을 드러내는, 교인들을 이용해 자기 배를 불리 것이라면, 오늘 본문의 어리석은 목자 처럼, 양을 죽이고 잡아 먹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어리석은 목자를 따라가는 것 처럼, 많은 이들이 그런 가르침 따라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하면 그 말씀을 묵상하며 순종하려는 노력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교리학자나 목사는 이렇게 설명하는데 합니다. 교황의 말이 성경 보다 더 권위가 있다는 로마 카톨릭처럼, 예수님께서 직접하신 말씀 보다 교리학자나 목사의 말을 더 신뢰합니다. 그게 더 편하니까요. 다 내려 놓을 필요 없으니까요. 세상이 더 좋고 예수님께 순종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진정한 목자 예수님을 거부하고 어리석은 목자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I became impatient with them)" 주님 곧 오신다 약속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침묵하는 어린 양이 아닌 "좌우에 날선 검을 든 (계 1:16)" 심판주로 오십니다. 제 믿음, 우리 신앙, 교회 돌아보며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간절히 긍휼을 바라며 회개해야 합니다.
반면, 마지막 때에 내말을 지키는 가련한 양들, 남은이들이 있음을 오늘 본문 뿐 아니라, 성경은, 역사는 증거합니다. 엘리야 때 바알 우상 앞에 무릎 꿇지 않은 7000명, 사도행전의 제자들, 박해에도 충성했던 빌라델비아 교회, 로마 카톡릭의 암흑기에도 말씀 지키며 주님 증거했을 이름 모를 성도들, 마틴 루터, 청교도들, 오늘도 목숨 걸고 복음 전하는 선교사님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 포기하고 주님 따르는 형제, 자매님들. 주님 곧 오신다 약속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은 30냥이 아닌 주의 주, 왕의 왕, 온 열방의 통치자로 오십니다. "가련한 양들"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 진정한 목자 예수님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마25:21)" 칭찬 듣는 저와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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