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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Jonah)
요나는 구약 성경 39권 중 32번째 책으로 12권의 소선지서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나에게 당시 근동 지역의 강대국이며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앗수르의 큰 성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외치라 명령합니다. 요나는 그 명령을 거부하며 니느웨와 반대 방향인 서쪽 다시스로 도망하는 이야기로 요나서는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불손종하여 도망치는 요나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방인 선원들이 대비가 되고, 이스라엘만 생각하여 화내는 요나와 온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비가 대조되는 흥미로운 책입니다.
개관과 구조
- 저자: 선지자 요나, 여로보암 2세 때 선지자[1]
- 저작 시기: BC 780
- 당시 통치자: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
- 목적: 궁휼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에 대한 교훈
- 요나에서 보는 하나님: (하나님 앞에 겸손한 이에 대한) 궁휼
- 동시대 선지자: 아모스, 호세아
- 책 이름 약자: 욘[2], Jonah[3]
구조와 특징
- 하나님을 피해 도망하는 요나 (1장)
- 물고기 뱃속의 요나 (2장)
- 니느웨 백성의 회개 (3장)
- 요나의 분노와 하나님의 자비 (4장)
특징
-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다른 선지서와는 다르게 요나서는 선지자 요나 이야기가 주제입니다.
-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요나 선지자를 언급하는 장면을 기록합니다(마 12:38-42; 눅 11:29-32).[4]
- 요나가 그리스도의 유형이라는 것은 예수님 자신의 말씀에서 분명합니다. 마태복음 12:40-41에서 예수님은 요나가 고래 뱃속에 있었던 것과 같은 시간 동안 자신이 무덤에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은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설교에 직면하여 회개한 반면, 예수님을 거부한 바리새인들과 율법 학자들은 요나보다 훨씬 더 위대한 분을 거부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와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진리를 전했던 것처럼, 예수님도 오직 하나님만을 통한 구원에 대한 동일한 메시지(요나 2:9; 요한복음 14:6)를 전하십니다(로마서 11:36).[5]
- 요나서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고 꾸민 이야기라는 주장에 대하여: 복음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요나서의 역사성을 부정할 수 있을까요?[4] 궁극적으로, 자유주의 엘리트들은 요나의 기록이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을 어떤 의미에서든 학자로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6]
- 니느웨는 요나의 설교로 회개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다시 악해졌고 약 150년 후 나훔이 그들의 멸망을 예언합니다.
하나님을 피해 도망하는 요나 (1장)
이스라엘의 적대국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들의 죄악을 알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요나는 반대 방향의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을 갑니다. 큰 폭풍으로 위협을 느낀 선원들은 잠자는 요나를 깨워 다른 이처럼 각자의 신에게 기도할 것을 요청합니다. 또한 누군가의 죄 때문인지 제비뽑기를 하는데 요나가 뽑혔습니다. 요나는 회개하지 않고 자기를 물에 던지면 배가 잔잔해질 것이라고 합니다. 선원들은 하나님께 자신들의 무죄함을 맹세하며 그를 바다에 던지고 즉시 바다가 잔잔해지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제물을 드리고 서원하였습니다. 한편 요나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물고기 배속에서 삼일 밤낮을 있었습니다.
- (1: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요나는 자신의 죄와 어리석음 때문에 자신 외에는 아무도 더 나쁜 처지를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참된 회개자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요나는 이것이 자신의 죄악에 대한 형벌이라고 보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벌을 달게 받으려 합니다. 양심이 깨어나고 폭풍이 일어나면, 그 혼란을 일으킨 죄를 회개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그것을 평온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다른 것은 양심을 달래지 못할 것입니다. 요나는 배 밖으로 던져져야 합니다.[7]
- (1:16)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그들은 전에도 몹시 두려워했었습니다(요나 1:10, 히브리어 표현이 여기와 동일함). 하지만 전의 두려움은 모호하고 불분명했으나, 이제는 여호와, 곧 요나의 하나님이 두려움의 대상이심을 인정했습니다.[8] 그리고 그들은 재물을 드립니다.
물고기 뱃속의 요나 (2장)
물고기 배 속의 요나는 기도하며 고난 가운데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주께 서원을 갚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합니다.
- (2: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시편 3:8, 요한계시록 7:10을 비교하십시오. 이것은 고백과 찬양, 신조와 테 데움(Te Deum)입니다. 그것은 그의 찬송가의 요약이며, 그가 겪은 모든 일의 결과입니다. 가장 충만한 의미에서 구원은 이미 믿음과 확신에 찬 기대 속에서 그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그것의 저자이며, 오직 그분께만 찬양이 돌아갈 것입니다. 이 지점에 도달하면, 요나의 처벌은 효과가 있었고, 그의 징계는 끝났습니다.[8]
니느웨 백성의 회개 (3장)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사십 일이 지나면 멸망할 것을 선포합니다. 그러자 니느웨 모든 사람이 회개합니다. 하나님도 내리시려던 재앙을 철회하십니다.
- (3: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3:5-10) 니느웨의 회개와 개혁에는 신성한 은혜의 경이로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복음 세대의 사람들을 정죄합니다(마태복음 12:41).[10] 아주 작은 정도의 빛만으로도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기도로 죄를 고백하고, 죄에서 돌이키는 것이 진노를 피하고 자비를 얻는 수단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왕의 모범을 따랐습니다. 그것은 국가적 행위가 되었고, 국가적 멸망을 막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심지어 짐승의 울부짖음과 먹을 것이 없어 신음하는 소리조차도 그 주인들에게 하나님께 부르짖는 일을 상기시켜줍니다.[7]
- (3: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피할 수 없는 재앙을 무엇이 제거했는지 보세요. 금식과 굵은 베 옷만으로? 아니요, 삶 전체의 변화입니다. 금식이 그들을 심판의 위험에서 구해낸 것이 아니라, 삶의 변화가 하나님을 호의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가 금식을 욕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금식을 존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금식의 참뜻은 음식을 금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피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금식을 음식 금욕에만 국한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금식을 모욕하는 사람입니다. 금식을 합니까? 당신의 행위로 그것을 보여 주십시오.” Chrysostom, On the Statues, Hom. iii. 4, quoted by Pusey[8]
요나의 분노와 하나님의 자비 (4장)
니느웨가 회개를 통해 재앙을 면한 것을 요나가 몹시 싫어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불평합니다.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 동쪽에 초막을 짓고 성읍을 살펴보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박넝쿨을 예비하사 그늘을 주시니 기뻐하다가 다음 날 벌레가 먹어 그늘이 사라지고 뜨거운 동풍이 불자 괴로워하며 요나는 성을 냅니다.
- (4: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모든 성도들이 기쁨과 찬양으로 여기는 것을 요나는 하나님에 대한 성찰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영광인 자비를 베푸는 것이 마치 그분의 본성의 불완전함인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관대한 자비 덕분에 성도 모두는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요나는 죽음을 원했습니다. 이것은 어리석음, 고집, 그리고 강한 타락의 표현입니다. 요나에게는 교만하고 자비롭지 못한 마음의 잔재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니느웨 사람들의 복지를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았고, 그들의 멸망을 선포하고 목격하기 위해 왔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해 합당하게 겸손해지지 않았고, 자신의 신용과 안전을 주님께 맡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그는 자신이 도구가 된 선과 신성한 자비의 영광을 간과했습니다.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그것이 요나의 죄였습니다.[7]
- (4: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 (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의 감정과 행동과 선지자의 그것들 사이의 대조는 매우 강력합니다. 요나는 별로 가치가 없는 식물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있지만, 그 식물의 성장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권리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큰 도시를 불쌍히 여기지 않겠습니까? 그 도시는 하나님께서 권력을 갖도록 허락한 도시입니다. 요나는 하루 만에 돋아나 하루 만에 시들어 버린 넝쿨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도시와 그 수많은 인구와 수많은 가축을 불쌍히 여기지 않겠습니까? 그 중 가장 작은 것도 어떤 무의미한 식물보다 더 가치가 있고, 하나님께서 매일 그의 섭리로 그것들을 지탱하고 계십니다.[11]
관련 자료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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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프로젝트 (요나)
참고한 자료
- Zondervan NIV Study Bible (based on NIV 1984)
- John MacArthur Study Bible
- 구약성경개론 (Survey of the Old Testament - 폴 N. 벤웨어)
- http://kcm.co.kr/bible/kor/jon1.html 개역개정 - 한국컴퓨터선교회
- https://www.esv.org/Jonah+1/ ESV (English Standard Version)
- Agape Big Letter Study Bible (2005)
- https://www.gotquestions.org/Book-of-Jonah.html Got Questions Ministries
- https://biblehub.com/commentaries/jonah/1-1.htm Bible Hub Project
- https://en.wikipedia.org/wiki/Jonah Wikipedia
- https://www.puritanboard.com/ Puritan Board
각주
- ↑ (왕하 14:2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 ↑ https://www.bskorea.or.kr/bible/korbib_shortword01.php
- ↑ https://www.logos.com/bible-book-abbreviations
- ↑ 4.0 4.1 (마 12: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 ↑ https://www.gotquestions.org/Book-of-Jonah.html
- ↑ https://www.puritanboard.com/threads/the-book-of-jonah-considered-pure-fiction.84128/
- ↑ 7.0 7.1 7.2 Matthew Henry’s Concise Commentary
- ↑ 8.0 8.1 8.2 Cambridge Bible for Schools and Colleges
- ↑ 9.0 9.1 https://en.wikipedia.org/wiki/Gustave_Dor%C3%A9
- ↑ (마 12: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 ↑ Pulpit Commentary